수다 (64) 썸네일형 리스트형 문턱에 선 듯 불안감을 주는 AGI 어느 날 문득, 내가 서 있는 땅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조용하지만 거대하게, 천천히 보이지만 실은 맹렬하게. AGI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변화 앞에서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두려움을 느낀다.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저 신기한 도구쯤으로 여겼다. 뉴스에서 AI가 언급될 때마다 '그런가 보다' 했고, 자율주행차나 주식 시장의 변동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면서, 이것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전문가의 영역에서 우리 일상으로 스며들어온 이 힘은 지금까지의 모든 틀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AGI 시대가 온다고 한다. 그것도 곧.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해결하는 범용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말한.. 금목서 일본 어느 사찰 가는 길에서 처음 만났던 금목서. 은목서도 함께 피어 있었다. 그때는 그저 지나쳤다. 내 코끝을 스친 것이 기억의 뿌리를 내릴 줄은 몰랐다. 이제 금목서는 숨은 무언가를 찾는 놀이처럼 나에게 온다. 낙엽이 떨어진 공원길, 어디쯤에선가 향기가 먼저 손을 내민다. 나는 멈춘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린아이처럼, 보물찾기하듯. 보이지 않는 한 그루가 이토록 넓게 제 몸을 푼다는 게 신기하다. 향기는 방향을 갖지 않는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데 어디에나 있다. 머릿속 구겨진 생각들의 주름 사이로 스며들어 주름을 편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것들이 멀어진다. 가을임에도 노랗지도 빨갛지도 못한 단풍이 그냥 누런빛으로 떨어진다. 흐리고 비 오는 날들이 물들 시간을 주지 않았다. 강변도 공원도 아.. 책임 책임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나를 향한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향한 책임이다.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두 책임의 무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 어깨를 짓누른다. 나를 향한 책임은 주어진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다.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나는 벌레처럼 작아진다. 자괴감이 온몸을 감싼다. 반대로 그 구성을 다하면 비로소 인간 구실을 한 것 같은 안도가 찾아온다. 두려움이 책임감과 맞물리면 일의 시작이 망설여진다. 막상 시작하면 잘 해내지만, 그 전에 머릿속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에너지를 양껏 쓴다.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무력해지는 것만 같다. 남이 책임감 없이 행동할 때는 '왜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 한마디 던지고 말 수 있지만, 내가 그러면 견딜 수 없.. 부조리, 세상의 맨 얼굴 국회 입법청문회에 출석한 검사들의 모습을 보며 얼굴이 굳어지는 나를 느꼈다. 그들의 태도, 공무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법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오만함, 그리고 자신들의 조직 논리 외에는 그 어떤 도덕적 잣대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은, 비단 사법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의 근저에 깔린 부조리라는 원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이치나 도리대로 굴러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게도 그 기대에 등을 돌린다. 정직하게 노력하는 이가 좌절하고, 권력을 가진 자가 뻔뻔하게 특혜를 누리는 모습은 일상다반사다. 어쩌면 이 세상의 기본 원리는 공정함이 아니라 부조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치에 맞게 살려는' 당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그.. 시간의 무게 아버지는 19년 전 간이식수술을 받으셨다. 그때의 회복은 가족 모두에게 기적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파킨슨병이 찾아왔고, 최근 들어 신장까지 온몸이 조금씩 더 불편해졌다. 이제는 작은 동작조차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균형이 흐려지며,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존엄까지 겹쳐 고통스러워하신다. 이런 현실을 보는 일은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간경화로 시작된 아픔, 30년간 한 움큼의 약을 먹는 것도 지겹다고, 잦아진 응급 상황과 예상되는 앞날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하신 아버지는 말을 더듬거리면서도 단호하게 본인의 의지를 말씀하신다. 그때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체념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선택권을 지키려는 간절함 같았다. 삶이란 것이 결국 시작과 끝 모두 타인.. 꽃무릇 공원 음지에 꽃무릇이 보인다.진한 홍색의 꽃이 9월, 추석 무렵임을 알려준다.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오고 있음을. 꽃무릇이 군집을 이루기 시작하면늘 다니던 길도 황록색 느티나무의 유혹을 받게 되고밝고 가벼운 옷들도느티나무처럼 깊은 색을 입고 싶어진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그 날도하동의 동행과 쌍계사 꽃무릇의 기약도 떠오른다. 이런 날은유지해 오던 마음의 기준이 낮아져결심과 다른 생각도 행동도 하게 된다. 이럴 때 누군가 꽃대만 올라와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무릇처럼“괜찮다”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천박한 독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나는 당선 사실 그 자체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이며 우리나라가 여전히 후진국형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극의 증거라 생각했다.그렇지 않은가? 중학생 토론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RE100도 모르는 무식함과 손바닥 王 자, 틱이 의심되는 도리도리, 아침 드라마를 보는 듯한 후보 부인의 사과 영상.그래서 윤설열 개인은 비호감이지만 찍던 당 그대로, ‘이번엔 정권을 뺏길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그 청백전의 방식대로 투표하여 유권자의 주권행사방식을 고민했을 정도였다. ‘아니.. 대의까지는 아니라도 나 개인에게 분명 불이익을 줄 것 같은 사람에게 투표를 하다니... 바보 아니야?’ 하고 말이다. 처음부터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안하겠다.’가 공.. 개바우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일몰 후 가로등이 켜진 공원을 걷다가 춘식이를 만났다. 나를 믿고 무게를 완전히 나에게 기대는, 팔랑팔랑 귀에 입이 볼록 나온. 덩치는 크지만 분명 겅중거리는 걸음이 아기가 분명하다. 양산 어느 카페에 들렀다가 반려동물 손그림을 우연히 봤다. 사장님 따님이 그리신다고. 오래된 사진첩을 뒤져 바우를 찾았다. 사진을 받기까지 얼마나 기대하며 기다렸는지… 나는 바우라는 단모 치와와를 8년 키웠다.우리 바우는 강아지, 그러니까 개 왕국의 12왕자 중 11번째 왕자로 왕족의 성인 “개”씨, 개바우이다. 개바우는 왕족답게 침착하고 헛짖음이 없는 의젓한 강아지였다. 혹자는 겁이 많다고 겁돌이라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 겁이 많은 개는 주인 뒤에 숨어 맹렬하게 짖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 이전 1 2 3 4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