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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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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 세상의 맨 얼굴 국회 입법청문회에 출석한 검사들의 모습을 보며 얼굴이 굳어지는 나를 느꼈다. 그들의 태도, 공무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법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오만함, 그리고 자신들의 조직 논리 외에는 그 어떤 도덕적 잣대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은, 비단 사법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의 근저에 깔린 부조리라는 원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이치나 도리대로 굴러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게도 그 기대에 등을 돌린다. 정직하게 노력하는 이가 좌절하고, 권력을 가진 자가 뻔뻔하게 특혜를 누리는 모습은 일상다반사다. 어쩌면 이 세상의 기본 원리는 공정함이 아니라 부조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치에 맞게 살려는' 당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그..
시간의 무게 아버지는 19년 전 간이식수술을 받으셨다. 그때의 회복은 가족 모두에게 기적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파킨슨병이 찾아왔고, 최근 들어 신장까지 온몸이 조금씩 더 불편해졌다. 이제는 작은 동작조차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균형이 흐려지며,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존엄까지 겹쳐 고통스러워하신다. 이런 현실을 보는 일은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간경화로 시작된 아픔, 30년간 한 움큼의 약을 먹는 것도 지겹다고, 잦아진 응급 상황과 예상되는 앞날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하신 아버지는 말을 더듬거리면서도 단호하게 본인의 의지를 말씀하신다. 그때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체념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선택권을 지키려는 간절함 같았다. 삶이란 것이 결국 시작과 끝 모두 타인..
꽃무릇 공원 음지에 꽃무릇이 보인다.진한 홍색의 꽃이 9월, 추석 무렵임을 알려준다.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오고 있음을. 꽃무릇이 군집을 이루기 시작하면늘 다니던 길도 황록색 느티나무의 유혹을 받게 되고밝고 가벼운 옷들도느티나무처럼 깊은 색을 입고 싶어진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그 날도하동의 동행과 쌍계사 꽃무릇의 기약도 떠오른다. 이런 날은유지해 오던 마음의 기준이 낮아져결심과 다른 생각도 행동도 하게 된다. 이럴 때 누군가 꽃대만 올라와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무릇처럼“괜찮다”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천박한 독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나는 당선 사실 그 자체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이며 우리나라가 여전히 후진국형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극의 증거라 생각했다.그렇지 않은가? 중학생 토론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RE100도 모르는 무식함과 손바닥 王 자, 틱이 의심되는 도리도리, 아침 드라마를 보는 듯한 후보 부인의 사과 영상.그래서 윤설열 개인은 비호감이지만 찍던 당 그대로, ‘이번엔 정권을 뺏길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그 청백전의 방식대로 투표하여 유권자의 주권행사방식을 고민했을 정도였다. ‘아니.. 대의까지는 아니라도 나 개인에게 분명 불이익을 줄 것 같은 사람에게 투표를 하다니... 바보 아니야?’ 하고 말이다. 처음부터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안하겠다.’가 공..
개바우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일몰 후 가로등이 켜진 공원을 걷다가 춘식이를 만났다. 나를 믿고 무게를 완전히 나에게 기대는, 팔랑팔랑 귀에 입이 볼록 나온. 덩치는 크지만 분명 겅중거리는 걸음이 아기가 분명하다. 양산 어느 카페에 들렀다가 반려동물 손그림을 우연히 봤다. 사장님 따님이 그리신다고. 오래된 사진첩을 뒤져 바우를 찾았다. 사진을 받기까지 얼마나 기대하며 기다렸는지… 나는 바우라는 단모 치와와를 8년 키웠다.우리 바우는 강아지, 그러니까 개 왕국의 12왕자 중 11번째 왕자로 왕족의 성인 “개”씨, 개바우이다. 개바우는 왕족답게 침착하고 헛짖음이 없는 의젓한 강아지였다. 혹자는 겁이 많다고 겁돌이라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 겁이 많은 개는 주인 뒤에 숨어 맹렬하게 짖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
지금 요즘은 시간을 자주 놓친다. 분명 저녁일 텐데도, 바깥은 아직 한낮처럼 밝다. 시계를 보기 전까지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혹은 하루가 늘어난 것 같은 착각 속에 머문다. 잠깐, 정말 잠깐 시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한여름이 되면 익숙해지겠지. 흐린 날이 끼면 그 착각은 더 짙어지고,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시간은 더 조용히 스며든다. 이렇게 짧은 적응의 틈이 지나고 나면, 숨이 턱 막힐 무더위가 곧 찾아오겠지. 환한 빛이 만들어낸 시간착각의 마법이 지금 이 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빛이 시간을 속이는 그 짧은 순간 속에서.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체육관 선거가 있었던 시대, 민주주의가 미완의 상태였던 그 시절을 우리는 종종 비판한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 부모님들이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땅을 오늘날의 대한민국으로 만들어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시대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 노력을 존중한다. 어르신들은 대체로 보수를 지지하고, 젊은 세대는 진보를 선호한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2030세대 중에도 현실적 보수 성향을 보이는 이들이 늘고 있고, 일부 기성세대도 변화에 열린 모습을 보인다. 정치 성향이 단순히 나이로 결정되는 시대는 지났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통일이 당연한 숙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무리한..
2025 여느 때와 다른 1월크고 거친 붓으로 화선지에 한 점 한 점 정성스레 찍는 속도로내 의지로 때론 그렇지 않게 모든 것이 지나갔다. 지겨우리만큼 혐오스러워 효능감이 떨어져 버린 정치도피해자만 남은 안타까운 사건도하나의 전쟁터가 되어 걱정스런 젊은이들도기본조차 기대할 수 없는 언론의 현실도어쩌면 나의 죽음일 수 있겠다 싶은 죽음도 돈이 되는 것들도게으른 행정과 전제검찰의 놀음도모두 가치도 의제도 없다. 이제야 내 집처럼 느껴지는 느림도, 파도 파도 깊어져야 하는 사랑 같은 이야기로 하루하루를 살아 선택의 폭이 그리 없음을 알면서도 계획을 세우고 의지를 다진다. 그리고 최선의 출발을 한다.정답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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